1960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신임 의약품 심사관 프랜시스 올덤 켈시(Frances Oldham Kelsey)는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결정을 내립니다. 유럽 전역에서 이미 널리 사용되던 진정제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의 미국 내 판매 승인을 거부한 것입니다. 이유는 단 하나, "안전성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다수의 규제기관은 제약회사의 제출 자료를 기반으로 승인 여부를 결정했고, 업체의 영향력은 지금보다 훨씬 강력했습니다. 하지만 켈시는 회사가 제출한 데이터만으로는 임산부 및 태아에 대한 안전성을 확인할 수 없다고 보고, 반복적으로 보완자료를 요구했습니다. 특히 임상시험의 설계와 장기적인 부작용에 대한 평가, 그리고 기형 유발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처럼 끈질긴 심사 요구는 당시에는 보기 드문 일이었고, 제약사는 이를 무시하거나 지연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켈시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탈리도마이드는 미국 시장에 출시되지 않았고, 미국 내에서 이 약으로 인한 신생아 기형 피해는 막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 유럽과 일본 등에서는 이미 해당 약이 임산부에게 처방되고 있었고, 수천 명의 아기들이 팔다리가 기형으로 태어나는 참극이 이어졌습니다. 그중 일부는 사망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켈시의 결정은 단순한 ‘승인 보류’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이 사건은 미국 의약품 규제 체계를 전면 개편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미국 의회는 1962년 케포버-해리스 개정법(Kefauver-Harris Amendment)을 통과시켜, 신약 승인 시 효과와 안전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것을 법적으로 요구하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신뢰하는 의약품 심사 체계의 기초가 바로 이때 마련된 것입니다.
국민 모두가 의약품과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직접 검증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규제기관은 단순한 행정기관이 아닌, 공공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최후의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프랜시스 켈시의 사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규제, 이해충돌에서 자유로운 판단, 그리고 무엇보다 공익을 우선하는 자세가 없다면, 그 대가는 결국 국민이 치르게 됩니다.
의약품과 의료기기 심사는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생명을 보호하는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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